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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woo Lemans GSE, 나의 첫 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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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woo Lemans GSE, 나의 첫 차

Jasonw 2010. 8. 25. 20:05

<Wrote on blog.naver.com/jasonw/my car story at 2004/04/26>

1995년 봄쯤이었던가..
학교를 졸업한 해에..친구의 자취방 주인댁으로 부터..
나름대로는 명마를 인수했다.

대우 르망 GSE 87년식.

하늘색을 가진, 양쪽 문짝이 뭔가에 그을려 ..광택도 거의없고.. 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차였다고 해야할까..
수동에 파워도아닌 기계식 핸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건, 그 당시 나온 동급 승용차 중에서 가장 트렁크나 실내가
넓었다는 사실..  -- 그래서일 까.. 나는 지금도 해치백 스타일을 좋아한다.--

아마도 이 사실이 지금껏 실내가 좀 넓고 편안한 차를 선호하게 하는 지금의 취향을 만들게 한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차의 무게가 1톤이 채 안되었고..연비도 나름대로는 좋고..
여태 운전을 하면서 속도계의 끝을 넘겨 본 차가 딱 두대 있다..티코와 르망.
당시 안양으로 직장을 잡게 되면서 얼마간 원주에서 안양까지 출퇴근을 하였는데..
그때 심심찮게 즐겨하던 아침저녁으로의 소일거리는 회사에서 집까지 1시간에 끊는거였다.

젊을 때는 누구나 그런짓들 많이 하듯이..나역시 그때는 아마도 속도광이었던거 같다.
지금이야 무서워서 내래도 안내지만,.. 그리고 그게 미친짓이란걸 알게 된 이후로는 속도에는 관심이 없다..
(물론 지금은 4WD SUV에 빠져 살기 때문이지만).

암튼 40만원에 인수한 이 차로 원주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게 되었다.
한 1년여정도 탔을까.. 연료장치의 이상으로 결국엔 폐차장으로 가게 된다..

****************

대우 르망 국내 모터리제이션을 앞당긴 주역

86년 데뷔한 르망은 현대 엑셀, 기아 프라이드와 함께 국내 자동차 보급과 자동차 문화 정착에 큰 역할을 한 차다. 공기저항계수 0.32를 자랑하는 유선형 차체는 국내 최초로 에어로 다이내믹 개념을 도입해 주목받았다. 독일 오펠 카데트를 그대로 들여와 만든 르망은 4도어 기본형 외에도 3도어 레이서와 5도어 펜타5, 2.0 임팩트, 드레스업 튜닝카 이름셔 등으로 큰 인기를 모으면서 12년 동안 100만 대 넘게 판매되었다   글•이상필 기자(spikelee@carvision.co.kr)




1986년 6월 27일 대우 부평공장에서 열린 르망 1호차 탄생 기념식



현대 엑셀, 기아 프라이드와 함께 80년대 후반 국내 소형차 시장을 이끈 르망. 뛰어난 달리기 성능과 공기저항계수 0.32의 유선형 보디로 인기를 모았다


1984년 6월, 미국 GM과 자회사인 독일 오펠, 그리고 한국의 대우자동차는 4억3천만 달러(당시 약 3천500억 원)가 들어가는 공동 프로젝트에 합의한다. 오펠이 설계한 차를 대우가 만들고 GM이 폰티액 브랜드로 판매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2년 뒤인 1986년 6월 27일, 르망은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5천여 고객들의 박수갈채 속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르망이 데뷔할 무렵은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100만 대(85년)를 넘어서면서 급속하게 자가용 승용차 붐이 일기 시작한 때였다.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도 400만 명을 넘어 10명 당 한 명 꼴이었고, 승용차 판매대수는 86년 15만 대, 87년 24만 대를 기록하면서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었다. 승용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부유층의 사치품’에서 ‘중산층의 필수품’으로 자리이동을 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GM•오펠•대우의 공동 프로젝트

르망의 등장은 국내 자동차시장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 소형차 시장을 독주하던 현대 포니엑셀의 각진 스타일에 비해, 공기저항계수 0.32를 자랑하는 르망의 유선형 보디는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앞부분을 낮추고 뒷부분을 높게 한 쐐기 모양은 돌고래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공기저항을 줄이고 트렁크의 크기를 키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풍만한 곡선을 이루는 앞 펜더와 범퍼 아래로 자연스레 내려온 에어댐 역시 당시 승용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대우의 첫 앞바퀴굴림 승용차로 탄생한 르망은 길이×너비×높이가 4천260×1천663×1천362mm인 보디에 휠베이스 2천520mm로 소형차로서는 상당히 큰 몸집을 갖고 있었다.

르망의 베이스 모델인 된 차는 84년 데뷔한 오펠의 카데트(Kadett, 사관생도라는 뜻)다. 소형차 시장에서 폴크스바겐 골프와 쌍벽을 이루며 유럽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카데트는 84년 풀 모델 체인지 된 이후 유럽의 최우수차(1985년)로 뽑혔고, 85년에는 45만 대가 팔려 단일 차종 판매대수 세계 8위를 기록한 베스트셀러다.
르망에 얹은 엔진은 1천498cc 89마력으로, 국산 소형차로서는 처음으로 전자식 점화장치를 갖춘 것이 특징이었다. 제원표 상의 연비도 16.5km/X로 당시 승용차 중 가장 뛰어났다.

안전성 면에서는 미 연방 자동차안전기준(FMVSS)에 맞춘 안전설계와 조립, 소형차 중 가장 제동력이 좋은 2계통식 X형 브레이크, 체형에 따라 5단으로 높이 조절이 가능한 안전벨트, 정면충돌 때 앞 도어가 차체 바깥쪽으로 비껴나가도록 설계해 뒤 도어의 잠김을 방지한 논재밍 타입 도어구조 등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최고시속에서 그랜저와 쏘나타 앞서

르망은 판매에 들어가자마자 국내 소형차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달리기 성능과 정숙성 등에서 경쟁차들을 한 발 앞서며 ‘달리는 즐거움(fun to drive)’이라는 새로운 말까지 만들어냈다. 170km인 최고시속은 당시 동급차는 물론, 현대 그랜저(시속 162km), 쏘나타(시속 165km) 등 한두 등급 위의 차보다 앞서는 것이었다. 르망은 데뷔 이후 스포츠 드라이빙을 꿈꾸던 젊은 층에게 사랑 받으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새 강자로 떠올랐다. 특히 빨간색 르망은 그동안 금기시 되던 ‘승용차의 빨간 컬러’와 ‘소형차의 검은색’을 해금시키는 역할을 했다.

86년 10월에는 3도어 해치백 스타일의 르망 ‘레이서’가 데뷔했다. 공기저항계수를 0.30으로 조금 더 낮춘 레이서는 9월 데뷔한 현대 포니엑셀 스포티와 함께 국내 3도어 승용차 시대를 주도했다. 레이서의 엔진은 4도어와 같은 것이었지만 200mm 짧은 차체와 30kg 줄어든 차의 무게로 최고시속 180km를 냈다. 데뷔가 빨랐던 포니엑셀 스포티의 86년 판매대수는 391대였지만, 르망 레이서는 두 배가 넘는 798대가 팔렸다. 특히 젊은 층에 큰 인기를 끌어, 당시 여대생들 사이에서 ‘백마를 탄 기사’라는 말 대신 ‘검정 르망을 탄 기사’를 기다린다는 유행어까지 나돌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중형차를 능가하는 소형차’를 표방하는 최고급형 르망 살롱 GTE가 더해졌다. 르망 살롱은 충격흡수력과 원형복원력을 높인 림 범퍼를 갖추었고 범퍼와 연결되는 사이드 몰딩 아랫부분을 짙은 회색으로 처리한 투톤 컬러를 국내 처음으로 썼다. 또 LCD형 계기판과 앞뒤 파워 윈도 등의 편의장비를 더해 중형차 값에 버금가는 579만 원에 팔렸다. 한달 후인 12월, 르망은 미국으로 수출되어 GM의 상표를 달고 ‘폰티액 르망’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르망의 데뷔 첫 해 판매대수는 1만6천601대. 현대의 포니엑셀(4도어 프레스토 포함)의 4만8천421대에는 못 미쳤지만, 7월 이후 6개월만에 세운 기록으로는 큰 성공이었다.
87년에도 르망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이어졌다. 4도어 세단형이 4만2천810대가 팔려 현대 프레스토(4만8천771대)의 뒤를 바짝 쫓았고, 레이서는 4천174대가 팔려 포니엑셀 스포티(544대)를 크게 앞서 나갔다. 이처럼 포니엑셀과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던 르망에게는 단 하나 5도어 엑셀과 경쟁할 모델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그래서 대우는 88년 3월 5도어 모델인 ‘펜타5’를 개발, 시장에 내놓았다. 르망 레이서를 5도어로 변형시킨 것으로 엔진과 기본장비가 같았다.

펜타5는 데뷔 첫해 7천295대가 팔려 같은 시기 1만1천702대가 팔린 포니엑셀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펜타5를 포함한 르망의 88년 한해 판매대수는 5만1천597대로 대우의 승용차 생산대수(7만4천514대)의 70%쯤을 차지했다.
88년 9월에는 미국 수출형에만 싣던 컴퓨터제어 직접연료분사방식인 TBi 엔진을 고급형 GTE에 더했고 89년 4월에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 핸들, 휠커버 등이 바뀐 페이스리프트 모델 GSi가 등장했다. 같은 달 데뷔한 포니엑셀의 후속모델인 뉴엑셀을 의식한 모델 체인지였다. 곧이어 5월에는 미국 수출형인 1.6X 엔진의 1.6 TBi도 나왔다. 최고출력은 이전 모델보다 7마력 높은 96마력/5천500rpm이었다.

90년 3월 르망은 다시 한번 페이스리프트를 거쳤고, 두 달 뒤인 5월에는 배기량 1천997cc TBi 엔진을 얹은 2.0 임팩트를 선보였다. 1월에 나온 현대 스쿠프에 대항하기 위해 고출력 엔진을 얹었지만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값은 820만 원으로 소형차 중 가장 비쌌다.
91년 2월에는 르망 역사상 가장 고급스럽고 특이한 차 이름셔가 데뷔했다. 이름셔는 르망 임팩트에 독일의 오펠 전문 튜너 이름셔의 에어로 파츠를 더한 양산 드레스업 모델이다. 드레스업은 물론 튜닝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국내 상황에서 이름셔의 등장은 대단히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차값이 1천만 원을 넘어설 만큼 비싸 많이 팔리지는 못했다.

국내 첫 드레스업 모델 르망 이름셔

91년 10월, 르망은 다시 한번 마이너 체인지를 거치게 된다. 실내외를 손질해 더욱 미끈한 이미지로 단장했고, 전체적인 앞모습의 변화로 엔진룸이 길어져 차 길이도 116mm 늘어났다. 안전성을 보강해 도어에 임팩트 바를 넣고 에스페로에 쓴 9인치 싱글 점핑 부스터로 브레이크 성능을 높인 것도 특징이다.

92년 7월 데뷔한 르망 GTi에는 1.5X MPFi 엔진이 얹혔다. 이 엔진은 91년 나온 에스페로 1.5 DOHC에 이어 두 번째로 대우가 자체 개발한 것으로 소음이 적고 중저속에서 높은 출력을 내는 것이 장점이었다. 대우는 이 때부터 오랜 파트너였던 GM과 결별할 것을 예상하고 엔진을 비롯한 여러 부분의 국산화에 들어갔으며, 92년 10월 GM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93년 5월에는 에스페로에도 얹힌 1.5X DOHC 엔진의 르망 RTi가 나왔다. 최고출력 100마력으로 달리기 성능이 뛰어났다. 앞바퀴와 서스펜션을 연결하는 부분에 진동방지 댐퍼를 2개 더해 소음을 크게 줄이고 승차감을 높인 것도 이 모델의 특징이다.
93년 이후 르망의 판매대수는 7만1천669대로 3년 만에 상승세를 보였지만, 94년 후속모델 씨에로의 데뷔와 함께 4만2천67대로 줄고, 95년 7천779대, 96년 1천783대, 97년 385대로 급격하게 줄었다. 결국, 96년 11월 대우의 첫 독자모델인 라노스가 등장하면서 3개월 후인 97년 2월 생산이 중단되었다.

르망은 만 11년 동안 승용차 판매 53만6천254대, 수출 51만6천99대라는 기록을 세우고 단종 되었다. 80년대 후반, 현대 엑셀, 기아 프라이드와 함께 르망은 국내 승용차 시장의 한 축을 이루며 자동차의 보급과 자동차 문화 정착에 큰 역할을 했다. 파격적인 스타일과 시원한 달리기 성능은 르망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현대 엑셀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둔 덕분에 단 한번도 국내 승용차 판매 수위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채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말았다.

르망 이름, 어떻게 붙였나?

1986년 대우는 르망의 데뷔를 앞두고 차 이름을 공모했다. 모두 7천919점이 응모되었지만 아쉽게도 당선작은 없었다. 응모작 중에는 ‘코스모’와 ‘피닉스’같은 영어 이름이 많았고, ‘아리랑’, ‘누구나’, ‘호돌이’ 등 한글이름도 있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는 ‘내수차와 수출차의 이름이 다르면 품질과 성능까지 차이 난다는 이미지를 줄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출명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르망(Lemans)’이라는 이름은 GM이 지은 것으로, 미국에서는 폰티액 디비전으로 팔렸다.

르망은 프랑스 서부의 작은 공업도시 이름이다. 이 도시는 해마다 6월에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르망 24시간 레이스’가 벌어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13.48km의 코스를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려 우승자를 정하기 때문에 차의 내구성과 드라이버의 투지가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즉 르망이라는 차 이름에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의 경주차가 그렇듯, ‘내구성과 성능이 뛰어난 차’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르망에 대한 해외 언론의 평가
“도요타 카롤라보다 낫다”

“르망은 드라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매력을 전해주는 차다. 높은 기어비는 잦은 변속을 요구하지만 멋진 고속주행을 보장한다. 수동기어는 자동기어와 다른 운전재미를 준다. 고속에서 과자깡통 같은 반응을 보이는 보통 7천 달러 짜리 차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르망의 장점은 이런 멋진 속도를 낼 수 있음에도 상당히 경제적인 차라는 점이다. 르망은 값만 가지고도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차다”
<모터 트렌드> 87년 2월호 시승기

“전체적으로 품질이 탁월하다. 솔직히 나는 시보레 스펙트럼, 도요타 카롤라, 포드 에스코트를 마다하고 르망을 택하겠다. 그 이유는 대체로 주관적인 것이다. 혼다와 닮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르망의 실내 디자인은 매우 특색 있고 기능적이다. 또, 비행기 조종석 같은 중앙집중식 계기판을 갖추고 있다. 르망은 다른 경쟁차들보다 더 단단해서 실제 운전에서는 잡소리가 안 난다. 또 르망은 다른 값싼 동급차보다 운전하는 즐거움을 더 많이 준다.”
<워싱턴 포스트> 87년 2월 20일 자

여전히 빛나는 르망의 매력
데뷔 후 15년,
잊혀지기에는 아직 이르다

대우 르망은 1986년 태어나 97년 단종될 때까지 만 11년 동안 생산되면서 국내 소형차시장의 중요한 축을 이루어왔다. 스포티한 디자인에 묵직한 고속주행 성능은 당시 르망의 구매 포인트였다. 낯선 메이커였던 독일 오펠이 개발한 차라는 점도 ‘유럽은 머나먼 곳’으로만 여겼던 국내 소비자들의 묘한 호기심을 자아냈다. 자칭 고등학생 카 매니아였던 기자도 르망 덕분에 오펠이라는 메이커를 처음 들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태어난 지 15년, 단종된 지 4년째에 접어들지만 지난 1980년대 초•중반 유럽에서 ‘올해의 차’로 뽑히기도 했던 오펠 카데트의 저력은 여전히 대우 르망에 살아 있다. 지금도 국내 도로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르망을 자주 만날 수 있고, 중고차시장에서도 변함 없이 ‘중고시장의 엔트리 모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젊은 층의 선망 어린 시선을 모았던 화려한 옛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중고 르망은 아직까지 흔히 하는 말로 “쌩쌩하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중고시장에서 르망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사회 초년생들. 경제적 여유가 별로 없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직장인들이 싼값에 패밀리카로도 쓸 수 있는데다 여전히 괜찮은 성능을 지녀 인기가 적지 않다.
장한평 대일자동차상사 정덕기 씨는 “30대 초반의 운전자들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눈에 익은 차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들은 값과 일부 조건이 원하는 수준과 맞을 경우 대개 몇 번 타보았거나 낯익은 차를 고르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시장에서 팔리는 르망의 시세는 보통 150만 원 안팎. 최근 대우차 사태로 오래된 모델의 경우 부품 조달 등이 어려울 가능성이 있어 고객들의 발길이 조금 뜸해졌지만, 한때 많은 인기를 얻었던 차들이 그렇듯 르망의 부품은 그나마 구하기 쉬운 편이다. 소형차로서는 무거운 차체 때문에 연비가 떨어지지만 여전히 튼튼한 트랜스미션도 믿을 만하다. 단, 93년 이전에 생산된 차를 고르면 대형 중고시장에서 사더라도 소모품에 대한 보증 서비스를 받을 수 없으므로 연식을 어느 정도 참고해서 고르는 것이 유리하다.


르망의 국내 판매대수(영업용 제외)
연도 1986 1987 1988 1989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대수 16,601 46,984 51,597 78,827 85,059 69,358 64,215 71,669 42,087 7,779 1,783 385

계: 536,254

르망 1.5 GSE의 주요 제원
크기
길이×너비×높이 4260×1663×1362mm
휠베이스 2520mm
트레드 앞/ 뒤 1400/1406mm
무게 910kg
승차정원 5명

엔진
형식 직렬 4기통
굴림방식 앞바퀴굴림
보어×스트로크 76.5×81.5mm
배기량 1498cc
압축비 9.0
최고출력 89마력/5500rpm
최대토크 12.9kg•m/3000rpm
연료공급장치 카뷰레터
연료탱크 크기 52X

트랜스미션
형식 수동 5단
기어비 ①/②/③ 3.545/1.957/1.303
④/⑤/짋 0.892/0.707/3.308
최종감속비 ―

보디와 섀시
보디형식 4도어 세단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
서스펜션 앞/ 뒤 스트럿/토션 빔
브레이크 앞/ 뒤 디스크/드럼
타이어 155SR 13

성능
최고시속 170km/h
0→시속 100km 가속 ―
시가지 주행연비 16.5km/X

값 519만 원(데뷔 당시)

 

<카비전, 2001년 03월호 - 저작권자 (주)자동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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